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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민-박정희-박근혜-최순실 이들 일가는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G9G9 2016. 11. 28.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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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알고싶다'가 박정희, 박근혜, 박근령 부녀와 최태민의 인연을 짚었다.  

 

26일 밤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는 '악의 연대기'라는 부제로 진행됐다. 이날 방송에서는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을 저격한 김재규 정보부장이 남긴 마지막 메시지에 최태민이 있었음을 조명했다. 

 

박정희는 17년 간 대통령에 재임하며 유신체제를 시행했고, 정권 강화의 이유로 사법살인까지 시행했다. 이런 암흑기를 끝내기 위해 박정희의 최 측근이었던 김재규 정보부장이 박정희를 직접 저격했고, 이는 10.26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당시 김재규를 변호했던 변호인은 관련 문서들을 가지고 있었다. 변호인은 "항소이유서를 우리변호사가 작성해서 냈는데 추가로 본인이 보충하겠다고 했다. 자기가 왜 박정희를 살해했는지에 대한 이유 중 하나가 더 있었다"고 밝혔다.

 

김재규가 직접 쓴 추가 항소서에는 "박대통령 가족에 관한 것이라 공개된 법정에서 밝힐수 없으나 꼭 밝혀둘 필요가 있어서 밝힌다'는 글이 담겨져 있었으며, 여기에는 최태민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경향신문의 전 편집국장 역시 "'최태민이란 사람이 박근혜에게 접근 해 온갖 못된 짓을 한다. 박근혜가 온갖 나쁜 짓을 다 하면서 아버지보다 더 귀하게 생각하는데 이렇게 해도 되냐'고 했다"고 떠올렸다. 

 

이후 김재규는 사형을 당했다. 그러나 37년 만에 최순실 게이트가 세상에 알려지며 박근혜 대통령과 최태민 일가의 40년 인연이 수면 위로 떠올렸다. 

 

이와 함께 앞서 1979년 중앙정보부가 최태민을 조사했던 결과가 공개됐다. 당시 그는 7개의 이름과 6명의 부인을 뒀으며, 일제 감정기에 순사로 활동하기도 했었다.  

 

과거 최태민은 독립 활동을 위해 밀정이 되어 일제 순사가 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 전문가는 "시험도 안 보고 (순사로) 추천을 받았다는 건 그만큼 일제에 충성도가 높았다는 단적인 증거"라며 "일본 경찰 추천으로 순사가 됐다"고 말했다. 

 

해방 이후 최태민이 개명을 한 것도 미심쩍은 부분 중 하나였다. 이에 대해 박수현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자기 경력과 신분을 감춰야 하니깐 (친일파들이) 개명을 많이 한다. 친일했던 사람들이 애국자로 둔갑하고 이런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혀를 찼다. 

 

최태민의 변신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는 일본 순사에서 불교 승려, 사이버 무속인, 중학교 교장, 목사에 이르기까지 변신에 변신을 거듭했다.

 

그는 이후 범죄로 4년간 도피행각을 펼쳤고, 이후 공해남이라는 이름으로 성당에서 요한이라는 세례명을 받고 대전 보문산으로 향하기도 했다. 무속인이 터를 잡았던 마을에 등장, 최태민이 아닌 원자경으로 자신을 칭하며 신흥 종교를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최태민은 난치병을 앓는 환자는 자신을 찾아오라고 신문에 광고를 내기도 하는 등 적극적인 포교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은 이날 사이비 교주의 전형적인 수법으로 세 가지를 꼽았다. 약한 감정을 이용해 믿음을 갖게 할 것, 재산 편취를 위한 가족 관계를 끊게 할 것, 올가미를 씌워 절대적으로 복종하게 할 것 등이었다.

 

최태민은 실제 육영수가 꿈에 나타나 딸을 도와달라는 메시지를 전하며 박근혜 대통령과 만남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육영수 여사의 모습을 보여줬다는 거다. 

 

이에 대해 2007년 최태민 문제를 폭로했던 김해호는 "최태민이 과연 박근혜의 마음을 뭘로 사로잡았느냐. 어머니를 보여준다는 것"이라며 "그러면 영적인 신의 능력으로? 천만의 말씀이다. 최태민에게는 딱 교리는 없었지만 사람들을 꾈 수 있는 좋은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바로 최면"이라고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신경정신과 변영돈 박사는 "일종의 환상을 이용하는 최면 기법인데 실제로 죽은 사람이 살아올 수는 없는 것"이라며 "그래서 그 환상 속에서 그 사라의 꿈을 꾸는 것처럼 그런 것을 이용해서 죽은 사람을 불러내 대화를 시킬 수 있다"고 언급했다.

 

최면전문가 김영국 박사는 "서서히 상대방의 마음에 신뢰감을 형성해서 마음을 열어놓고 그러고 나서 서서히 어떤 암시를 줘야 이 사람을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을까 싶다"며 "만약 준비 단계가 안 돼 있는 상태에서 '내가 육영수 여사야' 이렇게 말했다면 이 사람 정신 나간 사람 아니야 이랬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어 "최태민이 계속해서 사전 작업을 통해 가지고 신뢰감을 얻어놓은 상태라면 그것은 결정적인 한 방이 될 수 있다"고 짚었다.

 

박근령의 남편 신동욱 공화당 총재는 "1973년 박근혜 영애가 공식, 비공식 행사들이 있었다. 그 공식 비공식 행사장에 최태민이 등장을 했다"고 설명해 이러한 주장들을 뒷받침했다.  

 

또한 과거 한 언론은 최태민이 육영수 여사 서거 전 TV에서 최면술과 관련해 관심을 표해 그가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고 보도한 사실이 공개돼 이목을 끌었다.

 

이밖에도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은 최태민이 박근혜의 뒤에 숨어 여러 재단을 좌지우지 했다는 것을 추적했다.  

 

최태민은 줄곧 재단 직원들에게 박근혜 이사장을 대통령으로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했다. 한 제보자는 "(최태민이) 시대가면 변하면 여러분은 전부 청와대로 들어갈 사람"이라는 말을 했다고 진술했다. 

 

또 이날 방송에서는 최태민이 박근혜와 동생 박근령의 만남을 막았다는 추측도 제기됐다. 박근혜에게서 가족들을 차단했다는 거다.

 

 

 

 

 

최태민 이 사람의 살아온 과거 행적을 보면 참 재미있습니다.(일부 개신교 측에서는 뒤늦게서야 최태민 '목사'라고 부르지 말라고 하더군요.)

 

원래 1942년부터 1945년까지 황해도에서 순사를 했던 사람입니다. 

해방하고 난 뒤에 남쪽으로 와서 최상훈으로 이름을 바꾸고 강원도, 대전, 인천 등지에서 경찰을 했었습니다.

 

그러다 군대로 어떻게 자리를 옮겨서 일을 하다가 얼마 가지 못하고 최봉수로 이름을 바꾼뒤에 

갑자기 대한비누공업협회, 대한행정신문사 부사장 자리에 오르는 등 해왔던 일과는 상관없는 일들을하게 되는데 

아무래도 최태민의 그 입으로 사람들을 속여서 이런저런 자리들에 오르지 않았나 싶어요.

 

그리고 한 여자와 결혼을 하게 됐는데.. 다른 여자와 놀아나다 고소 당하고 부산으로 도망을 갔고.. 그 길로 승려가 됐습니다. 

또 이름을 최태운으로 바꿨어요.

 

1년정도 숨어 살다가 부산에서 다시 결혼을 한것으로 알고있는데.. 최태민 마누라가 총 몇명인지 정확하지가 않습니다. 

5명이라는 말도있고 6명이라고도 하는데 그만큼 많긴 합니다. 그리고 자식은 3남 6녀로 총 9명을 낳았어요.

 

 

여튼 승려생활 하다 결혼생활 다시 하다가.. 부산 옆에 양산이라는데로 가서 개운중학교를 설립하면서 교장노릇을 합니다. 

아마도 여자가 해줬겠지요. 그런데 교장도 재미가없었는지 2년정도 하다가 다른 일을 여러가지 했고.. 

한 회사의 회장 자리로 있다가 유가증권 위조혐의로 검찰이 조사에 들어가자 또 도망갑니다.

 

 

그리고 최태민은 또 이름을 '공해남'이라고 바꾸는데요 이때는 승려가 아닌 천주교로 가서 영세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대전으로 가서 갑자기 난치병을 치료하는 사이비종교를 만들어서 활동합니다. 

 

 

이렇게 듣보잡 소규모 사이비 종교를 만들어서 별짓다하고.. 이리저리 떠돌면서 살다가 기회를 잡게 됩니다.

박근혜의 엄마인 육영수 여사가 총맞아 죽게 되었는데.. 

자신의 꿈에 육영수 여사가 계속 나타나서 박근혜를 도와주라고 했다며 편지를 보내는데.. 여기에 걸리게 됐던모양이에요.

 

박근혜를 만난 뒤, 최태민은 목사 안수를 받습니다. 

<월간중앙>(1993년 11월호)은 “(목사 직을) ‘돈 주고 샀다’는 것이 교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나 이 사실이 확인된 적은 없습니다. 

분명한 한가지는, 목사 안수는 받았지만 신학대학이나 교단이 인정하는 신학교에서 신학교육을 받은 적은 없다는 점”이라고 전했습니다.

‘태민’이라는 ‘마지막 이름’을 얻은 것도 이 즈음입니다.

 

 

박정희 시절... 국가정보원에서 최태민에 대해 조사를 했는데..

당시 정권에서도 사이비 목사, 승려라고 판단을 내린상황.

그리고 중앙정보부 보고서에도 박근혜가 최태민 말만 듣는다고 보고서에 쓰여져있던 내용이 있다고 합니다.

박정희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검찰에 넘긴 뒤 검찰 판단에 따르겠다”고 했다죠. 

하지만 최태민은 새마음봉사단의 명예총재(총재는 박근혜)를 맡는 등 10·26 때까지 박근혜의 옆을 지켰습니다.

 

 

10·26 뒤 김재규는 항소이유보충서에서 최태민을 언급합니다. 

 

“본인이 결행한 10·26 혁명의 동기 가운데 간접적이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 한 가지는, 총재 최태민, 명예총재 박근혜양으로 되어 있는 구국여성봉사단 문제이며, 본인은 최 목사의 부정행위를 상세히 조사해 박대통

 

령에게 보고했지만 박대통령은 근혜양을 그 단체에서 손을 떼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근혜양을 총재로 최태민 목사를 명예총재로 올려놓았다.”

 

 

박근령, 박지만 역시 노태우에게 편지를 써서 최태민의 손아귀로부터 보호해달라고 부탁을 했지요.

그러나 박근혜는 최태민, 그리고 딸 최순실의 말만 듣고 그들이 하라는대로 했다고..

 

 

9명의 자식 중에서 최순실이가 자기 능력을 이어받았다고 이야기하면서 후계자로 찍었고 그래서 박근혜도 최순실 말을 잘 들었던 거겠죠..

 

 

84년 6월에는 박근혜가 좋은 환경을 다 버리고.. 최태민 집 앞으로 이사했고.. 차로 5분거리엔 최순실이 살고있었다고

 

 

최태민은 횡령 14건, 변호사법 위반 11건, 권력형 비리13건, 사기, 이권개입 등등 수많은 비리에 엮이지만 권력이 보호해주니 잘 살았지요.

 

 

그렇게 최순실도 어린 나이에 재산이 수백억대로 불어날 수 있었죠.. 

휴 한국이 어쩌다 이렇게 무당손에 놀아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고.. 

그리고 최순실은 아빠의 뒤를 이어서 여자 라스푸틴으로의 삶을 살았습니다. 

 

 

지난 2007년 당시 한나라당 대선후보 당내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가장 곤혹스럽게 했던 것은 최태민 목사를 둘러싼 각종 의혹이었습니다. 

최 목사는 1994년 사망 전까지 사기와 횡령, 권력형 이권개입 등 끊임없는 논란을 부른 인물로, 육영수 여사 서거 이후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던 박 후보를 등에 업고 각종 이권을 챙겼다는 의혹을 받았죠. 

 

최 목사 사후에는 그의 가족들이 다시 한 번 세간의 구설에 올랐습니다. 

최 목사의 사위인 정윤회(57)씨는 박 후보가 정치권에 입문한 1998년 이후 실제로 수년간 박 후보 주변을 맴돌았죠. 

정씨의 아내이자 최 목사의 다섯째 딸인 최순실(56)씨는 수백억 원대의 자산가로 알려져 최 목사가 비리를 통해 축적한 부를 물려받았다는 의혹을 샀는데 현 정권에서는 더했죠. 

 

당시 박근혜 후보는 최 목사 가족과 관련된 일체의 의혹을 부인했습니다. (그 부인들 현재보니 다 거짓이죠.) 

2007년 당내 후보 검증위 청문회에서 박 후보는 최 목사와 그의 가족과 관련된 의혹들을 

"음해성 네거티브 공세"라고 일축하면서 "의혹이 많이 제기됐지만 제가 아는 한 실체가 없지 않나 생각한다"고 답변한 바 있습니다.


 

 

 

 

 

 

 

 

박근혜의 남자로 알려진 최태민은 영세교라는 사이비 교단을 만들었다.

 

최태민에 대해 

최태민은 누구인가

1. 태어난 날과 죽은 날: 1912년 5월5일, 1994년 5월X일

2. 태어난 동네: 황해도 봉산군 사리원읍(원적), 경남 양산군 웅상면 삼호리(본적)

3. 엄청 많은 이름들

 

a. 최도원(선녀가 지었다는 어릴적 이름)

b. 최상훈(월남 후 개명한 이름)

c. 최봉수(부산 거주할 때 이름)

d. 최퇴운(1977년 3월9일 이전 호적상의 이름)

e. 공해남(천주교 중림동 성당에서 영세 시 사용한 이름)

f. 방민(계시에 의해 정해졌다고 하는 이름)

g. 자칭 태자마마

4. 학력: 황해도 재령 보통학교(국졸)

5. 경력:

'75년 4월29일 박근혜 후원으로 '대한구국선교회' 조직(최태민 총재, 박근혜 명예총재)

구국선교회는 '76년12월10일 구국봉사단으로 개칭되고

'79년 5월 새마음 봉사단으로 다시 개칭된었다가 전두환 정권 때 해산된다.

'63년 5월 민주공화당 중앙위원

'53년 경남 양산군 개운중학교교장,전국 불교청년회 부회장

'50년 7월 육군 제1사단 헌병대 비공식 문관,해병대 비공식 문관

'47년 4월 인천경찰서 경위 (사찰주임) '42~45년 황해도경 순사

 

6. 최태민이 저지른 비리들(중앙정보부에서 조사한 내역) - 인사청탁

[하나] ,,, 이OO을 준장으로 진급시켜준다고 하고 그 대가로 200만원 수수,,,
[둘],,, 남편을 중정에 복직시켜준다고 하고 그 대가로 2차에 걸쳐 150만원 수수,,,

[셋],,, K회장에게 구국봉사단 부산지단장에 임명해준다고 하고 그 대가로 200만원 수수,,,

[넷] 최태민은 각종 비리 의혹과 함께 박근혜와 막역한 관계임을 내세워 재산을 축적하였고, 이를 자녀에게 상속하였다는 의혹이 있다. 실제로 최태민의 딸인 최순실 부부는 강남의 200억 원 빌딩의 소유주이고, 여섯번째 딸 부부는 150억 원 규모의 부동산 소유주이다

7. 기사 인용

< 최태민 ‘박정희 일가 모든 불행의 원초적 시발점’ >

새누리당 박근혜 의원은 누가 뭐라고 해도 단연 차기 대권의 강력한 여권의 대통령후보다.

그러나 그녀의 대권가도의 발목을 잡고 있는 고 최태민 목사와 관련한 복잡한 의혹들이

악령처럼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무슨 이유로 ‘죽은 최태민이 산 박근혜의 대권가도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일까’하는 것이 세인들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이 보고서는 지난 1979년 10월23일(박 대통령 서거 3일전)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직접 올린 문건으로

최태민 목사의 비리와 비위사실을 적나라하게 적시한 문건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의미가 적지 않다.보고서에는 최 목사에 대한 구체적인 비위사실, 여자관계, 이권개입 등의 사례와 내용이 구체적으로 나열돼 있어 정보기관의 보고서임을 감지할 수 있다.

본보가 입수한 이 보고서는 지난 2007년 대선 당시 <선데이저널>에서도 일부 게재한 내용이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최 목사는 천주교, 불교, 기독교를 결합한 신흥종교인‘영혼합일법’을 설파했다.

최목사는 1975년 박 후보에게 3차례에 걸쳐‘고 육영수여사가 꿈에 나타나 근혜를 도와주라’고 했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면서 만나게 됐다. 그는 첫 만남에서 교계의 난맥상을 개탄하며 구국선교를 역설, 박 후보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대한구국선교회를 설립하고 전국의 동 단위까지 조직을 확대해

최대 300만명의 단원을 확보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최 목사는 이 단체가 조직된 이후

14건의 횡령, 사기, 변호사법 위반, 권력형 비리, 이권개입, 융자브로커 등의

비위행각을 했던 것으로 보고서에 적혀 있다.

또, 여성추문과 관련 12건의 내용이 적나라하게 기술되어 있다.

박근혜의 후견인 행세를 해 온 최 목사(전 구국여성 봉사단총재)는 지난 1994년 5월1일

영동 세브란스병원에서 노환으로 숨져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졌었으나

지난 2007년 대선에 회자되었다가 이번 대통령선거로 다시 급부상했다.

그의 망령이 박 후보 주변을 맴돌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과연 최태민은 누구인가. 또한, 박 후보와는 어떤 관계였기에

박정희 대통령이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직접 친국(중죄인을 친히국문하는 제도)까지 하게 되었을까. 이러한 물음에 일부 답을 줄 수 있는 자료가 바로 이번에 공개된 보고서다.

박 의원 측은 보고서 내용에 대해‘허위사실’이라고 일축하고 있지만,

의혹은 계속해서 퍼져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출처: 쓰레빠 닷컴

 

 

아래는 주갤러가 만든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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